배우, 가수에서 명품백 CEO로 변신한 그녀
데뷔 전부터 압구정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압구정 여신’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했던 임상아.
90년대 당시 카페에는 정우성과 구본승도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는데요, 당시에도 그녀에게 배우, 가수 등 많은 제의가 끊이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MC로 데뷔, ‘야망의 세월’로 배우활동을 시작하고, ‘형제의 강’ 등에서 배우로 활약한 그녀는 주영훈 작곡의 ‘뮤지컬’, 박진영 작곡의 ‘저 바다가 날 막겠어’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가수로도 큰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최고의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한 9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행을 결심하는데요. 배우와 가수로 모두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있던 그녀의 은퇴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쿨하게 “일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며 “이미지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어 답답했다”고 은퇴 이유를 밝혔는데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필름 프로덕션 과정에 입학했으나, 영화 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게 됩니다.
졸업 후 보그의 보조 디자이너로 정말 디자이너계의 바닥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 임상아. 하지만 한국에서 다져진 내공을 더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보수적인 패션업계에서 직접 발로 뛰며 원단과 가방 장인들을 찾아다니는 등 노력을 더해 자신의 가방 브랜드 ‘Sang-A’를 런칭하게 됩니다.
리한나, 비욘세, 앤해서웨이, 브룩쉴즈 등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이 입소문만으로 그녀의 가방을 찾았고, 송혜교 등 국내 스타들 또한 그녀의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걸그룹 출신 스타일리스트는 ‘Sang-A’백을 쓰기 위해 알아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재즈기타리스트 제이미 프롭과 결혼했지만 10년만에 이혼 했는데요. 슬하에 딸을 한명 두고 있는데요, 그녀의 딸인 올리비아는 임상아의 젊은 시절을 꼭 닮은 외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혼한 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내며, 남편의 새 아이들에 대해서도 올리비아에게 동생이 생겨 너무 기쁘다고 할 정도로 쿨한 관계를 유지중인 그녀.
최고의 자리에서도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쿨함에서 많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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