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영화 ‘이름 모를 소녀’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정소녀. 본명은 정애정이지만 연출을 맡은 김수형 감독의 권유로 이때부터 영화 제목에서 딴 예명 ‘정소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독특한 이름과 미모로 크게 인기를 끌며 70년대 CF퀸으로 떠오른 그녀.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광고 출연료로만 무려 2~3천 만 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참고로 당시는 평균 집값이 100만 원하던 시절.
덕분에 높은 광고 출연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는데, 당시 여배우들 중 유일하게 차가 있어 함께 일하는 여러 동료들을 태워주었다고. 게다가 여러 채의 빌딩을 소유할 정도로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던 정소녀는 27세 때 돌연 사업가인 남편과 결혼했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 후 누구보다 행복하고 공주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는 달리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부모님이 방송을 하지 말라고 강요한 데다가 딸이 태어난 지 1년여 만에 남편이 사업 실패로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 미국으로 떠난 지 3년이 되던 해 남편은 그녀에게 연락해 이렇게 요청한다.
여기에서 결혼하게 됐는데
이혼 서류를 만들어서 보내달라.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5년 만에 결혼생활을 마무리한 정소녀는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 되어 방송에 복귀하게 되는데, 또 한 번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된다. 바로 그녀가 가봉 대통령의 아이를 낳았다는 루머가 돌았던 것.
한 번은 라디오를 진행할 때 화장실에서 ‘정소녀가 그랬다며’라며 떠드는 이들을 직접 목격해 경찰서에 함께 가자며 손을 이끈 것은 물론, 그녀와 절친한 성우 송도순은 묙욕탕에서 루머를 퍼뜨리는 여성과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고.
‘내가 왜 연예인이 되어서 이랬을까?’라고 후회했다는 정소녀. 결국 방송을 떠나서 보험설계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으며, 가끔 방송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며 근황을 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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